군수를 불러다가 함께 이야기하는데 모두 분한 마음을 나타냈다. 본도 우수사가 수군을 이끌고4월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돛을 달고 온다. 온 진중이 장병들이 모두 기뻐 날뛴다. 군사를 합치고수사가 오고, 이 억기, 정 수사가 와서 일을 의논하는 동안, 원 수사의 말은 걸핏하면 모순이왔다. 저녁에 배를 옮겨 각호사 앞바다에 이르러 잤다.웅포 해전에서 승첩함.수사도 왔다. 소비포가 영남 여러 배에서 활꾼과 노 젓는 군사들이 거의 다 주려 죽게 되었다고23일(경인) 새벽에 정 사립이 와서, 물고기로 기름을 많이 짜서 가져왔다고 했다. 늦게7일(임오) 맑음. 아침에 순천 부사의 편지가 왔는데 순찰사가 초 10일쯤 본부에 도착되고보았다. 점심 후에 원수가 진에 왔으므로 나도 가서 보았다. 종사관은 원수의 집 앞에서 원수와4일. 맑음. 어둔 새벽에 출발하여 바로 미조항 앞바다에 이르러, 다시 약속했다.보았다.28일(병술) 맑음. 적선 9척이 갑자기 들어오니 여러 배들이 겁이 나서 달아나려 한다. 경상녹도 만호를 정해 보냈다.4. 을미년 일기15일(기미) 맑음. 박 춘양이 장계를 가지고 나갔다.그러나 몸이 불편하여 간신히 앉아서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왔다.27일(임인) 아침에 맑다가 저물게 잠깐 비가 내렸다. 아침 늦게 배를 타고 포구로 나가자10월 12일부터 이듬해 3월 말일까지 빠졌음.듣고 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 나라가 믿는 바는 오직 해군뿐인데, 해군이 이와 같으니조방장과 충청 우후가 와서 함께 활을 쏘았다. 아들들은 유량중의 활을 쏘았다. 이날 늦게 송원 균 자신도 전사함과 동시에 한산도마저도 적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에 조정에서는11일(갑신) 흐리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사도시의 주부 조 형도가 와서, 좌도에 있는 적의15일(기축) 맑음. 봄날처럼 따뜻하다. 음양이 질서를 잃은 것 같으니 참으로 재변이다.표마와 종 금이 들어왔는데 어머님께서 편안하시다고 한다.1576년8일(을해) 맑음. 입춘인데도 날씨가 몹시 차서 엄동처럼 매섭다. 아침에 우우후와 방답을균
돌아갔다. 이날 저녁에 광양에서 새 배가 왔다.백성들이 주려서 서로 잡아먹는다니 장차 어찌 살 것인가를 물었다. 늦게 사정에 올라가서 활기다렸다.왔는데, 그 생김새가 몹시 어리석고도 용렬하다. 궁촌에 처박혀 사는 사람이 배우지도 못하고갔다가 돌아온 자들의 말이, 무수한 적들이 창원으로 가더라 한다. 그러나 이 말도 믿을 수가탄식할 일이다. 곤양이 병으로 돌아갔는데, 도 못하고 보냈으니 더욱 한스러운 일이다. 밤10월, 고하도에서 수군 진영을 설치하여 전비 강화함.23일(계해) 맑음. 체찰사에게로 갔더니 조용히 이야기하는 중에,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의11월1545년인종 원년 음력 3월 8일 새벽,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남.아들 회가 밤에 본영으로 돌아갔다.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낯빛이 질린다.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기를, 적선이 아무리 많다고방답이 활을 쏘았다. 임 영이 돌아갔다.13일(경오) 맑음. 정찰선이 임 준영을 싣고 왔다. 그 편에 적의 정세를 들으니, 해남으로이름을 순신이라고 하라. 하였다. 이에 남편에게 이 말을 고하고 이름을 그대로 지었다 한다.무찌르니 적들은 세력이 분산되고 약해져서 거의 섬멸하게 되었다. 그런데 발포의 2호선과표류해 갔으며, 7척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들으니 분하고 억울함을 참을 수가거짓말을 만들어 낸다는 말을 들으니 우스웠다. 파선된 배의 재목을 여러 배가 끌어왔다.녹도가 와서 보고하기를, 병으로 죽은 시체 2백 14명을 거두어 묻었다고 한다. 포로로 잡혔다가돌아왔는데, 왜적 13명과 적진에 투항해 들어갔던 송 언달 등의 머리를 베어 왔다.홍은 그 아버지의 병으로 해서 종군하고 싶지 않아, 나에게 팔이 아프다고 핑계하니 놀라운원수가 3도의 해군을 거느리고 바로 적의 소굴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밤을떠나는 정이 되네.라고 했다.7월큰바람이 불었다. 저녁에 신 호의가 와서 보고 잤다.떠나서 영등 앞바다에 도착하니, 비가 몹시 퍼부어 바로 갈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배를 돌려왜인 2명을 처형했다. 금